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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카오스가 있었다.
전조는 전혀 없었다.
- 카오스는 모양도 소리도 빛도 없이 그냥 그렇게 무한한 크기로 나타났다.
- 카오스는 수천 년 동안 잠자다가 어느 날 갑자기 가이아, 즉 대지를 낳았다.
가이아는 남성적인 요소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수태를 하여 알 하나를 낳았고, 이 알에서 사랑의 원초적인 힘 에로스가 생겨났다.
- 에로스는 구체적인 형상을 띠지 않은 채로 우주 속을 돌아다녔다.
-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상태였지만, 그가 발산하는 사랑의 충동은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카오스는 신들을 낳는 것에 큰 기쁨을 느꼈다.
- 그래서 내친김에 에레보스(어둠)와 닉스(밤)을 낳았다.
- 이 둘은 이내 교접하여 아이테르(영기)와 헤메라(빛)을 낳았다.
- 영기는 위로 올라가 우주의 상층부에 드리웠고, 빛은 우주를 비추기 시작했다.
그런데 에레보스와 닉스는 자기네 자식들이 너무 이상해서 말다툼을 벌였다.
- 그들은 자식들이 싫었다. 그래서 이내 자식들로부터 멀어져 갔다.
- 영기와 빛이 나타나면 어둠과 밤은 즉시 도망을 쳤다. 반대로 어둠과 밤이 마음을 다잡고 돌아오면, 이번에는 영기과 빛이 달아났다.
한편 가이아는 혼자서 자식을 계속 낳았다.
그리하여 우라노스(하늘)와 우레아(산)와 폰토스(바다)가 태어났다.
- 우라노스는 위로 올라가 가이아를 덮었고,
- 우레아는 가이아의 옆구리에 자리를 잡았으며,
- 폰토스는 가이아의 몸 위로 퍼져 나갔다.
가이아의 가장 깊은 곳에는 또 다른 자식이 숨겨져 있었다.
- 타르타로스, 즉 동굴들로 이루어진 지하 세계가 바로 그 자식이었다.
- 하늘, 바다, 산, 지하 세계를 낳은 가이아는 여신이 동시에 완전한 행성이 되었다.
- 하지만 다산성의 여신 가이아는 그 뒤로도 많은 자식을 낳았다.
- 가이아는 자기가 낳은 우라노스와 결합하여 열두 명의 티틴(여섯 명의 티타네스와 여섯 명의 티타니데스)과 세 명의 키클롭스, 그리고 세 명의 헤카톤케이레스 즉, 50개의 머리와 100개의 팔이 달린 거인들을 낳았다.
그런데 우라노스는 자기가 어머니의 손아귀 안에서 놀아나는 장난감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아버지 역할을 거부했다.
- 그는 자기 자식들인 티탄들과 키클롭스들을 냉당하게 대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들을 지하 세계인 타르타로스에 가둬 버렸다.
- 이에 격분한 가이아는 땅속 깊은 곳에 갇혀 자기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자식들에게 날카롭게 벼린 낫을 건넸다.
- 미쳐 버린 그들의 아버지를 죽이고 지하 세계에서 벗어나라고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자식들은 우라노스를 너무나 두려워한 나머지 행동에 나설 엄두를 내지 못했다.
- 그들은 자칫 잘못하여 우라노스에게 벌을 받는 것보다 지하 감옥에서 썩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 그래도 티탄들 중의 막내인 크로노스만은 어머니가 내민 낫을 받아 들었다.
- 크로노스는 우라노스가 어머니 가이아를 강제로 감싸 안으려 할 때 기습을 감행했다.
- 그는 우라노스의 고환을 잡고 날카로운 낫으로 잘라 바다에 던져 버렸다.
- 우라노스는 고통에 겨워 울부짖으며 가능한 한 높은 곳으로 달아났다.
- 그는 그토록 잔인한 범죄를 저지른 아들이 무서워 거기에 그대로 머물렀다.
- 그 대신 서둘러 이렇게 저주를 내렸다.
- "감히 제 아버지에게 손을 댄 자는 거꾸로 제 자식에게 손찌검을 당하게 되리라."
이렇듯 많은 자식을 낳고 숱한 폭력을 겪은 뒤에, 하늘 우라노스와 대지 가이아는 영원히 결별했다. 이로써 크로노스가 세상의 지배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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