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루야족은 파푸아뉴기니의 원시 부족이다. 이들은 1951년에 호주 탐험가들에 의해 발견되기 전까지 문명 세계와 완전히 단절된 상태로 살아왔다.
이 부족에 대해 심화된 이해가 가능하게 된 것은 프랑스의 인류학자이며 "선물의 수수께끼(1996)"와 "친족 관계의 변모(2004)"의 저자인 모리스 고들리에가 1967년에서 1988년 사이에 행한 일련의 연구를 통해서였다.
고들리에가 처음 현지를 방문하여 발견한 것은 아직 석기 시대 수준의 기술에 머물러 있는 농경 수렵 사회였다. 그는 이 부족 신화의 기원과 그것이 어떻게 그들의 사회 구조를 조직해 나가는지를 이해하고자 했다.
바루야족에게는 국가나 계급의 개념도, 복잡한 위계질서의 개념도 없다.
반면 그들은 민족학자들이 지금까지 쌓아 온 모든 지식을 뛰어넘는 형태의 부계 사회 속에서 살고 있었다.
바루야족에게 정액은 모든 것의 중심에 위치한다. 인간은 정액과 햇빛의 혼합물인 "우"에서 나온다. 여자는 이 혼합물을 담아 놓는 하나의 용기일 따름이다. 그리고 이 혼합물이 잘못 만들어지면 계집아이가 태어나게 된다.
다시 말해서 난자의 존재를 몰랐던 바루야족에게 여성은 잘못 만들어진 인간일 뿐이었고, 생식의 주체인 남성이 <진정한 인간>인 남성을 낳는 데 도움을 주는 보조적인 존재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러한 여성관은 서구의 여성 혐오주의와는 성격이 전혀 다른 것이다(따라서 이러한 여성관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서는 우리의 통상적인 가치 판단 기준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사내아이들은 여덟 살이 되면 여성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가족을 떠나 열다섯 살이 될 때까지 마음에서 멀리 떨어진 산중에 머물며 통과 의례를 거쳐야 한다. 그곳에는 남성들로만 이루어진 공동체가 있다. 이 남성 공동체는 사내아이들을 마술적 의식들과 성에 입문시킨다.
소년이 열여섯 살이 되면 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성인으로 간주된다. 그들은 산에서 내려와 여자를 취한다.
소년들은 성관계를 갖고, 아기를 갖게 된 여자는 임신 기간에 최대한 많은 남성 파트너들과 관계를 가져야 하는데, 이는 다른 남성들의 정액이 태어날 아이를 튼튼하게 해준다는 믿음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어머니가 수유를 할 때도 모유는 <변형된 정액>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여성이 많은 모유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계속 여러 남성과 성관계를 가져야 한다.
바루야족 사회에서 여자는 토지 소유권이 없다. 또 경작할 권리도, 종교 의식을 행할 권리도 없다. 이 사회야말로 지금까지 알려진 사회 중 가장 부계적인 성격이 강한 사회라 할 것이다.
이러한 바루야족 연구를 통해 모리스 그들리에가 얻은 결론은 무엇인가? 그것은 지금까지 대부분의 민족학자들이 생각해 왔던 것과는 달리 사회는 경제의 반영이 아니라, 창건 신화의 반영이라는 사실이다. 바루야족은 어느 순간 정액이 모든 것의 근원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이 신앙을 중심으로 그들의 의례와 사회관계를 구축해 나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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