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오랫동안 진공을 두려워했다. <호로르 바쿠이(진공에 대한 공포)>라는 라틴어 표현이 시사하듯, 진공은 고대의 학자들에게 순전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관념이었다.
진공의 존재를 가장 먼저 언급한 학자들 가운데 하나인 데모크리토스는 기원전 5세기에 우리가 물질이라고 여기는 것은 텅 빈 공간에 떠 있는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설파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런 견해에 맞서 <자연은 진공을 싫어한다>라는 명제를 내세웠고, 한발 더 나아가 진공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제는 1643년 갈릴레이의 제자였던 에반젤리스타 토리첼리가 간단한 실험을 통해 진공의 존재를 증명할 때까지 무려 2천 년 가까이 유지되었다.
토리첼리는 길이 약 122센티미터의 유리관을 수은으로 채운 다음 수은이 담긴 그릇 안에 거꾸로 세웠다. 그러자 유리관 속의 수은이 내려가면서 위쪽에 텅 빈 공간이 생겨났다. 수은 때문에 공기가 유리관 속으로 들어갈 수 없었으므로 이 공간은 진공일 수밖에 없다. 이로써 토리첼리는 최초로 지속적인 진공을 만들어 낸 과학자가 되었다. 그는 같은 실험을 되풀이하다가 수은 기둥의 높이가 매일 변화하는 것을 보고 그것이 대기압의 변화에 의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 실험은 수은 기압계의 발명으로 이어졌다.
그로부터 몇 해 뒤에 독일의 물리학자 오토 폰 게리케는 최초의 진공 펌프를 만들었다. 그는 대기압과 진공에 관한 유명한 실험1)을 벌이기도 했다. 구리로 만든 두 반구를 꼭 맞추어 밀착시키고 한쪽 반구에 달리 밸브를 통해 내부의 공기를 빼내고 나자 16마리의 말을 양쪽으로 나누어 끌어당겨도 두 반구를 서로 떼어 낼 수 없었다. 이로써 게리케는 진공을 이용해서 두 개의 커다란 물체를 단단하게 결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텅 비어 있음은 동양 사상의 중요한 개념이기도 하다. 힌두교와 불교에서는 모든 중생의 미혹한 생각을 벗어난 상태를 일컬어 진공이라 한다. 노자 역시 <바퀴살 서른 개가 한데 모여 바퀴통을 이루는데 그 한복판이 비어 있음으로 해서 수레가 쓸모를 지니게 된다>라고 하면서 무의 효용을 역설했다.
현대의 물리학자들은 우주의 총 에너지 가운데 70퍼센트는 진공속에 있고 30퍼센트만이 물질 속에 있다고 추산해 냈다.
아인슈타인은 일찍이 우주의 진공에 주목했고 진공 에너지의 존재를 언급했다. 물리학자 플랑크와 하이젠베르크 역시 진공에 관심을 갖고 연구했다. 1948년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헨드릭 카시미르는 진공 속에 두 개의 금속판을 서로 마주 보도록 가까이 놓으면 대단히 미세하게나마 금속판들이 서로 끌어당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진공 상태에서 <카시미르 힘>이 생겨난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1990년대에 미국 항공 우주국은 카시미르 힘을 이용한 우주선이 태양계를 벗어날 수 있는 최초의 우주선이 될 수 있다고 보고 그것을 제작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 천문학자들은 허블 우주 망원경을 이용하여 우주 물질의 대부분을 이루는 암흑 물질의 존재를 입증할 만한 증거를 찾아냈다.
오늘날 진공 에너지는 천체 물리학의 첨단 연구 분야 가운데 하나로 간주된다. 한 이론에 따르면 진공이 물질을 만들고 따라서 빅뱅이 마로 <무>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다고 한다.
1) 오토 폰 게리케가 당시 마그데부르크의 시장이었기 때문에 나중에 <마그테부르크의 반구 실험>이라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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