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을 칠 때 사용하는 마르세유 타로1) 카드에서 이름 없는 메이저 아르카나인 13번 카드는 죽음과 부활을 상징한다. 이 카드에는 검은 밭에서 낫으로 풀을 베고 있는 살색의 해골 그림이 나와 있다. 해골의 오른발은 땅속에 묻혀 있고 왼발은 여자의 머리를 밟고 있다. 발 주위에는 세 개의 손과 하나의 발과 두 개의 하얀 뼈가 있다. 오른쪽 아래에서는 왕관을 쓴 머리가 미소를 짓는다. 땅에서는 노란색과 푸른색의 새싹들이 나온다.
이 카드는 연금술사들의 유명한 표어 VITRIOL2)을 생각나게 한다. 즉, "땅속으로 들어가서 잘못을 바로잡으면 숨겨진 돌을 찾게 되리라 Visita Interiora Terrae Rectificando Invenies Occultum Lapidem"라는 뜻이 이 카드에 담겨 있다.
그러니까 낫을 사용하여 잘못을 바로잡고 지나치게 자란 것을 베어 내야 검은 땅에서 새싹이 다시 돋아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 카드는 가장 강력한 변화를 상징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이 카드는 메이저 아르카나 전체를 놓고 볼 때 하나의 단절을 이룬다. 앞선 열두 개의 아르카나는 작은 신비로 간주된다. 그런데 열세 번째 이후의 아르카나는 위대한 신비에 속한다. 이때부터 천사나 하늘나라의 상징으로 장식된 그림들이 나타난다. 더 높은 차원이 개입되는 것이다.
깨달음의 경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죽음과 부활의 단계를 통과해야 한다. 이 단계에서 인간에게 심오한 변화가 일어난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로 죽지 않으면 다시 태어날 수 없다.
1) 마르세유 타로는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에서 많이 사용하는 타로 카드의 원조 버전이다. 패의 구성은 영어권과 한국, 일본 등지에 널리 퍼져 있는 라이더 웨이트 타로와 마찬가지로, 22장의 메이저 아르카나와 56장의 마이너 아르카나로 되어 있지만, 메이저 아르카나의 배열 순서가 다르고(8번이 "정의"이고 11번이 "힘"), 목판 화풍의 투박하고 예스러운 그림이 들어 있는 게 특징이다.
2) 비트리움은 황산을 가리키는 옛 이름이다. 연금술에서 황산은 대단히 중요한 물질이다. 8세기에 아라비아의 연금술사들이 발견한 황산은 화금석과 같은 기능을 하는 만능 용매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중세의 연금술사들은 비트리움이라는 말을 단지 "유리"를 뜻하는 라틴어 "비트레우스"에서 나온 것으로 보지 않고, 위와 같은 경구의 머리글자를 합쳐 놓은 단어로 여겼다. 이 경구를 처음으로 기록한 문헌은 15세기의 연금술사 바실리우스 발렌티누스가 쓴 "만능 용매"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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