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알로 시작해서 알로 끝난다. 알은 세계의 여러 신화에서 여명의 상징이자 황혼의 상징이다.
고대 이집트의 가장 오래된 우주 창조 신화에서는 천지 창조가 태양과 생명의 씨앗을 품고 있던 우주 알이 깨지면서 이루어진 것으로 묘사된다.
오르페우스 밀교의 신화에 따르면,
시간(크로노스)이 밝은 대기(아이테르)와 결합하여 암흑(에레보스) 속에서 은색 알을 낳았다. 윗부분에는 하늘을 아랫부분에는 땅을 품고 있던 이 알에서 자웅의 양성을 갖춘 개벽의 신 파네스가 나왔다.1)
힌두교의 서사시 가운데 하나인 "브라만다 푸라나"에도 난생 신화가 나온다.
이 신화에 따르면, 태초에 천지 창조에 앞서 우주 알 브라만다가 있었다. 이 알의 껍데기는 존재와 무의 경계를 이루는 히라냐가르바(황금 자궁)였다. 시간이 흘러 이 우주 알이 깨지자, 속껍질은 구름으로 변했고, 핏줄은 강이 되었으며, 액체는 바다가 되었다.
중국의 천지 창조 신화인 반고라는 거인의 이야기를 보면,
태초에 하늘과 땅은 달걀과 같이 뒤섞여 있었는데, 밝고 맑은 것은 위로 올라가서 하늘이 되고, 어둡고 흐린 것은 아래로 가라앉아 땅이 되었으며, 그 사이에서 반고가 생겨났다.2)
폴리네시아의 한 신화에도 태초의 앞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알은 토대와 바위를 품고 있었는데, 알이 깨지면서 3층 기단이 나타났고, 여기에서 토대와 바위가 인간과 동물과 식물을 창조했다고 한다.
유대교 신비주의 전승인 카발라에서는
우주가 288조각으로 깨진 하나의 알에서 생겨났다고 생각한다.
마치며
이러한 난생 신화는 한국과 핀란드와 슬라브족과 페니키아의 신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많은 민족의 신화에서 알은 다산성의 상징이다. 그런가 하면 어떤 문화권의 사람들은 알이 품고 있는 생명 에너지가 죽은 사람에게 새로운 힘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들은 애도의 뜻으로 달걀을 먹는다. 때로는 무덤 속에 달걀을 넣기도 한다. 죽은 사람이 저승을 여행하는 데 필요한 힘을 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1) 그리스의 희극시인 아리스토파네스는 "새"라는 희극에서 오르페우스 밀교의 이 난생 신화를 패러디하면서, "검은 날개를 가진 밤"이 암흑 속에서 바람의 애무를 받으며 알을 낳고 이 알에서 황금 날개를 가진 에로스가 태어나 세계와 신들을 창조했다고 노래한다.
2) 이 난생 신화가 기록된 최초의 문헌은 3세기에 삼국 시대 오나라 학자 서정이 엮은 신화집 "삼오역기"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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